[결정적 순간]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참모들과 함께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쏟아지는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전 정부의 경직되고 독선적인 모습들과 대비되며 연일 화제가 만들어지고 있죠. 국정운영에 대한 기대감이 80%를 넘나듭니다.


문재인과 노무현

문재인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운명같은 사이라고 할까요. 두 사람이 함께했던 결정적 순간들을 뽑아보았습니다.



결정적 순간1. 운명적인 만남

사법연수원 시절 문재인과 박원순

22회 사법시험을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12기)을 차석으로 수료했지만, 민주화 운동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좌절됩니다.


노무현과 문재인의 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시절의 노무현과 문재인

1982년 부산으로 내려와 노무현과 함께 합동법률사무소(현 법무법인 부산)를 차리게 됩니다. 상반되면서도 닮은 두 사람의 운명과도 같은 인연이 시작된 것이죠.


합동법률사무소 전단지

두 사람은 지역의 시국, 노동사건을 도맡으며 인권변호사로 활약을 합니다.



결정적 순간2. 저는 대통령 감이 됩니다!

노무현 선거포스터

노무현이 정치권으로 들어간 이후에도 문재인은 부산에 남아 인권변호사 활동을 계속합니다. 그러다 2002년 대선에서 문재인이 부산 지역 선대본부장을 맡게 됩니다.


당시 부산 선대위 출범식에서 노무현이 했던 연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죠.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는 말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결정적 순간3. 참여정부, 영욕의 시간들

임명장 받는 문재인

등 떠밀리 듯 참여정부의 초대 민정수석을 맡으며 문재인의 공직 생활이 시작되죠.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자 했던 그는 항상 청와대를 떠나고자 했지만 노무현의 위기와 부름에 등돌릴 수 없었습니다.


노무현 탄핵 변호인을 맡은 문재인

특히, 2004년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히말라야 여행 중 노무현의 탄핵 소식을 접한 그는 급하게 귀국해 변호인단을 주도하기도 했죠.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문재인

이후 시민사회수석과 민정수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연달아 맡으며 참여정부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됩니다.



결정적 순간4. 친구의 뒷모습

노무현과 이명박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노무현과 첨여정부에 대한 도를 지난친 공격이 계속됩니다. 심지어 단골 삼계탕집까지 탈탈 털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박연차 게이트와 측근들의 잇단 구속은 결국 노무현의 검찰 출두로 이어지게 됩니다. 검찰에 호응하듯 언론 역시 신나게 노무현을 압박합니다. 심지어 서울로 이동하는 노무현 일행의 차량을 헬기까지 동원해 생중계하기도 했습니다.


노무현을 바라보는 문재인

당시 노무현의 변호인 역시 문재인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검찰청 입구로 걸어가는 노무현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서린 안타까움이 느껴지시나요?



결정적 순간5. 상주

문재인과 안희정

노무현 서거는 문재인 인생의 전환점이 됩니다. 전직 대통령이자 친구의 비통한 죽음 앞에서 묵묵하고 의연하게 상주 역할을 수행하는 그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명박에게 사과하는 문재인

영결식 현장에서 이명박에게 "사죄하라"며 고함친 백원우의 행동을 대신 정중하게 사과하는 문재인의 모습을 보며 "박근혜를 이길 사람은 바로 문재인이구나 싶었다"고 김어준이 말하기도 했었죠.


노무현 흑백사진


문재인 흑백사진

노무현 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던 그는 야권과 지지자들의 열렬한 부름에 화답합니다. 2012년 총선에 출마하며 정계에 입문한 것이죠. 그토록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자 했던 그를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상주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억울한 친구의 죽음와 역사의 퇴행 앞에서 솟구치는 책임감과 정의감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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